* 이 여행 기록은 전문적인 라이딩 경험이 없는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니 참고바랍니다.
Day 3
혼자 너무 편하게 있었던 탓일까. 지난 밤은 9시에 기절해버렸던 것과는 달리, 폰질을 하다가 자정이 넘어서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느릿느릿 준비를 하다가 10시가 다되어서 출발한다. 이제 자전거에 짐을 싣고 출발하려고 하는 순간, 빗방울이 하나 씩 떨어진다. 바람막이를 꺼낼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백로더를 다시 풀기가 귀찮아서 그냥 출발한다.
제주도의 비바람은 거세다
이게 웬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비는 더 심해졌고 바람과 함께 나의 체온을 뚝뚝 떨어뜨린다. 사진 찍을 엄두는 나지 않고 오로지 생존을 위한 페달링을 하며 점심 식사를 할 곳을 향해 간다. 셋째 날 코스는 가장 평탄해서 많이 힘들지도 않고, 물이 예쁜 광경이 많이 펼쳐진다. 날씨만 좋았다면 최고의 마무리가 될 수 있었을텐데 매우 아쉽다. 어쩔 수 있나, 밥이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해맞이쉼터에 들어갔다. 메뉴를 보며 고민을 하다가 나의 처참한 꼬라지에 동정심이 일면서 가장 비싼 문어라면을 주문했다. 극강의 비주얼을 자랑하는 문어라면을 먹으니 힘이 좀 난다. 대기하는 많은 분들을 앞에 두고 밥까지 말아먹었다.
해맞이쉼터에서 문어라면, 11천원 (공기밥 1천원)
죄송합니다, 사진이 없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미끄러운 빗길을 가느라 내려서 사진을 찍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 휴대폰 잠금패턴을 풀지 못할 정도로 이미 다 젖어있기도 했다. 성산일출봉 인증센터부터 다음 포인트인 김녕 성세기 해변까지 30여 km를 가야하는데, 이는 꽤 먼 거리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 중간에 점심을 먹을 수 있어서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었다. 빨리 제주시내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자는 생각을 하며 경치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눈으로만 즐겼다. 참고로 성산일출봉 ~ 김녕 성세기 해변 ~ 함덕 서우봉 해변까지의 해안도로와 해변가는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서 빼어난 광경을 자랑했다. 맑은 바다를 보고 싶다면 이 쪽 해변을 찾아보길 바란다.
김녕 성세기 해변, 먹방 제외 오늘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그렇게 김녕 성세기 해변, 함덕 서우봉 해변 체크포인트를 지나 제주시내에 15시 정도에 진입한다. 시내 들어가기 전에 여행자 쉼터라는 곳이 보여서 들어갔더니, 이 곳을 지키시는 할아버지께서 믹스 커피를 한 잔 주신다. 어찌나 감사한지. 또 한 번 몸을 녹이며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출발했다.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요즘은 올레길 오르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들고 다들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해안도로 일주하러들 온다고. 다음에는 올레길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매국수를 먹으려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
19시 30분 비행기 출발인데 제주시에 15시에 들어왔으니 그래도 마음은 조금 놓인다. 추위를 버티며 달려왔기에 배가 고프다. 이른 저녁으로 자매국수를 찾아갔으나, 주변 국수집 고객을 다 뺏어온 듯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도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된다는 안내를 받았고, 그 옆집에 귤하르방을 파는 곳에 들어가서 몸을 녹였다. 인심 좋으신 사장님이 따듯한 커피를 한 잔 내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만쥬델리의 제주도 버전같다, 8개 3천원
자매국수에서 먹은 고기국수를 맛있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7천원
마무리
오늘 하루 종일 해가 뜨지 않았고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얼른 용두암을 찍고 자전거를 반납하러 갔다. 자전거샾 사장님을 다시 보니 이렇게 (나 혼자) 반가울 수가 없다. 짐을 다시 풀고 맡겨두었던 가방을 돌려받아 다시 돌아가는 짐을 싸고 인사 후 나왔다. 관리 잘 된 자전거 덕분에 수월하게 3일 간 기억에 남을 여행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찝찝한 상태로 김포공항 가는 비행기를 탄다. 여유가 된다면 2박 3일 일주를 끝내고 하루 더 숙박하는 것도 제주도 환상 일주를 마무리하는 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 자전거 일주는 해외 여행과 같은 정취와 국내 자전거 여행이라는 자유도를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좋은 여행 코스라고 생각이 된다. 체력에 자신이 있는 남성이라면 2박 3일이면 충분할 것 같고, 그렇지 않다면 3박 4일 정도로 타협하면 된다. 여성의 경우 전기 자전거를 대여하면 체력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안하던 육체 노동을 하는 셈이므로 당연히 힘들지만, 적당한 난이도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도장 인증으로 제주도 환상 일주 기록 마무리. 당분간 자전거는 타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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