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봉개동에 아무도 모르는 작은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은 "노네임드 봉개", 이름을 생각하니 사장님이 원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사장님의 의중은 내 알바 아니고, 나는 소개하고자 한다.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오르기 위해 봉개동에 숙소를 잡았었는데, 작업해야 할 일이 있어 그 주위의 카페를 찾아봤었다. 내가 있던 곳이 대로 변에 있어서 차들이 씽씽 다니기만 하고 해장국 집 뿐이었다. 검색 결과 몇 군대 나타나긴 했는데, 조용한 카페같은 게 있을까 기대하지 않고 다가갔다. 그런데 "이게 왠 걸"
그것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다만 내가 처음 찾아갔던 당시는 밤 10시였는데 카페 마감 시간이라 위치 확인만 하고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일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강아지가 같이 빠져나와 한참을 도망가서 사장님이 추격적을 펼치셨다. 강아지가 산책을 하고 싶었다고 하신다. 초면에 재밌는 풍경이었다. 다음 날 한라산을 오르고 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카페를 찾았다.
카페 풍경과 사장님
그리고 그 개
메뉴판부터 예사롭지 않다, 역시 제주 감성이다.
강아지 한 마리가 또 있다!
그렇다, 추격전을 좋아하는 그 강아지다.
제주도에서 식사를 항상 2인분 씩 먹어서 배가 몹시 불렀기에 나는 유난스럽게 에스프레소 한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블로그에 쓸거면 먹을거라도 하나 더 시켜야하지 않을까" 싶어서 백년초 티라미수 하나를 추가로 주문했다.
에스프레소는 사실 내가 마냥 좋아하는 터라 호언장담할 수는 없지만, 어디 하자 없이 충분히 맛있었다. 그런데 백년초 티라미수는 정말로 기억에 남는다. 처음 사장님이 가져다 주셨을 때 백년초 가루의 빨간 색과 꽃잎 모양의 숟가락부터 심상치 않았다. 숟가락으로 한 줌 찌르자 피 흘리듯 커피 즙(?)이 흘러나왔다 (근본 없는 설명 죄송합니다). 다시 정상적으로 설명하자면, 겉으로 보기엔 건조해보였는데 촉촉했다. 달달한 와중에 백년초 향도 껴서 상콤했다.
작업 분위기 잘 나온다.
커피와 함께 명함과 강아지들을 담은 스티커를 주셨다.
에스프레소와 백년초 티라미수 투샷
절반 정도 파헤쳐 먹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 더 주문할 뻔)
그렇게 맛있게 먹으면서 행복하게 작업을 하는 도중에 벼리가 나에게 다가와서 안마를 좀 해줬더니 계속 해달란다. 한 손으로는 맥북을 잡고 한 손으로는 벼리를 스담스담해줬다. 벼리는 적당히 신사답게 대해주면 잘 따라오는 듯 하다 (안마를 좋아하는 걸 수도). 그 와중에 메뉴에서만 본 르쉐가 등장, 르쉐는 성격이 조심스러워 손님이 많을 때는 나오지 않고 안에만 있는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눈치를 보면서 벼리랑만 놀았다.
어여쁜 르쉐가 나타났다.
어제 초면에 추격전을 보여주시기도 했고, 오늘도 나처럼 죽치고 있는 손님이 없어서 사장님과 간간히 담소를 나눌 수 있었다. 르쉐가 벼리보다 먼저 왔는데, 벼리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사람들을 잘 따르는 반면 르쉐는 손님들도 경계하고 늦게 들어와서 손님들이랑 노는 벼리도 약간은 경계한다고 한다. 그래도 사장님의 간식 타임 앞에서는 둘 다 평등하다.
사장님의 간식타임
다행히도 르쉐도 나와 조금은 친해졌더니 사장님께서 나에게도 간식을 선사할 기회를 주셨다.
간식 내놔
딱 하루 서너 시간 있었던 곳이지만, 내가 봉개동에 더 있었더라면 매일 매일 찾아갔을 카페이다. 사장님도 사근사근 친절하시고, 르쉐와 벼리 두 강아지도 매력 터진다. 짧은 시간 재미있는 추억을 쌓은 것 같다. 무엇보다 인적 없는 봉개동 구석에 (최근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긴 하다) 은은한 도피처처럼 불을 밝히고 있는 곳이어서 계속 생각이 날 것 같다. 계속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으나, 제주도를 또 언제 갈지 모르므로 번창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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